습관의 알고리즘
러셀 폴드랙 지음
신솔잎 옮김
비즈니스북스
사실 이 책은 완독까지 시간이 꽤 걸렸다. 그리고 완독후에 이 독후감을 쓰기까지 더 많은 시간이 걸렸다. 나 역시도 인간이 후천적으로 인간이 계발될 수 있다고 믿는 쪽이기에 이런류(?)의 책을 좋아하는 편이라 습관에 관한 이 책에 쉽게 관심이 가서 샀다. 그런데 읽어보니 생각보다 읽기 힘들었다. 일단 이 책의 단점부터 이야기하고 싶다.
독서가 느렸던 데엔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일단 책 내용이 쉽진 않았던 게 가장 큰 이유였다. 뇌라는 기관의 특성 때문일 수 있는데, 일단 주름진 뇌 구조는 다른 기관에 비해서 일반인들이 굉장히 이해하기 어렵다. 생각해보자. 위장이나 손가락의 해부학적 구조, 혀가 맛을 느끼는 생화학적 원리는 생각보다 쉬운 편이다. 그림으로 표현하기도 쉽고, 우리가 직접 보는 경우도 많으니 이해도 쉽다. 환원주의적으로 접근해서 생화학적으로 이해할 때도 대개 어렵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러나 뇌는 다르다. 나를 포함해서 뇌에 대해 깊이 배워본 적 없는 사람들은 뇌를 하나의 큰 덩어리로 생각한다. 기능적으로는 뭔가 다르겠지, 생각은 하지만 실제로 뇌의 크기나 3차원적 구조에 대해 제대로 접하기는 쉽지 않다. 생리학적으로도 신경, 뉴런에 대해 배우기는 하지만 그 수준과 뇌의 기관으로써의 역할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기는 어렵다. 생화학적으로 접근하면 더 곤란하다. 우리 몸의 다른 기관과 비교도 안될 정도로 많은 신경전달물질과 호르몬 때문에 머리가 아프다. 거기다가 아마도 인체에서 가장 연구가 덜 된 기관이라서 과학자들 역시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고 '이 실험을 통해 이런 것을 알았다~'라는 식으로 설명하는 것도 한 몫할 것이다. 요약하자면, 뇌는 일반인들에겐 정말 배우기 어렵다.
습관이 무엇인지 설명하기 위해 배경지식으로 설명할 뇌에 관한 이야기가 얼마나 많고 어렵겠는가? 자연스레 책이 어려워질 수 밖에 없는데, 이 책엔 또 다른 문제들이 더 있다. 저자 자신의 글쓰기 방식의 문제인건지 번역의 문제인 건지 뭐라 설명하긴 어렵지만 문체가 어렵다. 나름대로 흥미로운 사례들이 많이 실려있었지만 논문을 읽고 있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다. 이러한 사례를 읽는 건 재미있는데 뇌에 관한 실험을 이야기할 땐 실험을 이해하기 위한 배경지식을 다시 설명하고, 실험을 설명한 뒤 다시 결론을 이야기하다보니 읽는데에 많은 집중이 필요했다. 한두 내용을 말하기 위해서 꼼꼼하게 배경지식을 다 설명해준다. 좋게 말하면 근거가 탄탄한 책이다. 나쁘게 말하면, 인내심 있는 독자만이 끝까지 책을 읽을 수 있다. 내용은 좋은데 읽기는 어려운 책이다.
또한 번역에 있어서도 역자가 과학전문가가 아니어서 그런지 군데군데 오류가 보였다. 헌팅턴병에 관한 설명에서, 문제의 단백질 이름을 '헌팅턴'이라고 표현했는데 원문에도 그리 표현되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실제로 이 단백질은 '헌팅틴'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해당 단백질 이름에서 병명을 땄다고 하는데 사실은 발견자의 이름이 헌팅턴이라 헌팅턴 병으로 이름이 붙은 것이고, 나중에 분자생물학의 발달로 발견한 단백질을 관례에 따라서 '헌팅틴'이라고 이름붙였을 뿐이다. 순서가 완전 정반대로 쓰여져 있는데 신경과학자인 저자 본인이 이렇게 썼을리는 없을 것 같고 번역을 이상하게 한 것 같다. 오역을 할 정도로 기교를 부릴만한 내용은 아닐 것 같은데, 그렇다면 원문을 오독했다는 뜻인가? 이외에도 기저핵의 직접 경로와 간접 경로를 설명한 부분에서도 내가 이해를 못하는 건지, 설명에 오류가 있는 건지 앞뒤 내용이 틀린 듯한 부분이 있었는데 책 전체적으로 이런 부분이 몇 군데 있었다.
이런 부분 때문에 생각보다 완독에 시간이 걸렸고, 책의 결론을 생각하며 덮고 나니 독후감을 어떻게 써야할 지 막막했다. 뭐 그냥 읽고 넘기기엔 아까워서 지금이라도 독후감을 쓰고 있지만..
책의 내용은 정말 좋다. 다만 아쉽게도 '노력하면 다 된다!'나 '의지가 중요하다!'라고 소리치는 누군가에게는 희망을 꺾는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다. 습관을 고치기는 우리 생각보다 어렵다는 게 저자의 결론이기 때문이다. 21세기 뇌과학자들이 이야기하는 사실이 이런데, 우리가 애써 외면하면서 어쨌든 의지가 중요하다고 해봤자 원래 안될 게 갑자기 쉽게 되진 않을 것 같다. 그래서 더 나은 인간이 될 수 있는 꿈도 희망도 없으니 이번 생은 포기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다행인 점은, 우리가 현실을 직시함으로써(지금까지 밝혀진 사실이 진실인지는 모르지만 일단 현실이라고 하기로 한다) 더 현실적이고 본성에 맞게 자기계발을 하는 법을 고민해볼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은 저자의 주장을 여러가지 임상사례와 과학실험을 근거로 이야기하는 책이다. 또한 저자의 과학자로서의 책무나 양심 때문인지, 작가 출신 자기계발서적에서 흔히 범하는 확대해석의 오류 같은 걸 최대한 배제하는 편이라고 느껴졌다. 그래서 '이런 실험들은 있는데~ 아직 밝혀진 바는 없어서 맞다고 단언하긴 어려울 것 같다' 같은 내용도 나온다.
주장의 세부적인 내용은 사실 목차에도 나오고, 앞의 추천사에도 나온다. 주장(또는 사실) 몇가지만 이야기하자. 근거는 생략하겠다.
1. 우리는 일상의 대부분을 습관에 의지해서 산다. 처음에는 우리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습관을 만들지만 나중에는 습관이 우리 행동과 생각을 자동으로 지배한다.
2. 도파민은 습관에 중요한 역할을 하긴 하지만 미디어에서 호들갑 피우는 것만큼 결정적이고 단순하게 영향을 주는 건 아니다(즉, 다른 요소도 많이 작용한다).
3. 습관은 쉽게 지워지거나 바뀌지 않는다. 오히려 한번 생기면 영원히 유지될 정도로 끈질기게 존재한다고 보는 게 좋다.
4. 자제력과 의지는 생각보다 강하지 않다. 실제로 자제력이 강하다는 사람들은 더 강하다기 보다는 자제력이 필요한 상황자체를 피하는 식으로 해결한다.
5. 나쁜 습관을 고치기 더 어려운 이유가 있는데, 많은 경우 뇌의 생리학적 변화를 수반하기 때문이다(중독).
그리고 나를 비롯해서 이 책을 선택하는 많은 사람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 습관을 고치는 법을 적어보자. 이 내용도 요약일 뿐이니 자세한 방법이나 근거는 책을 직접 읽어보길 바란다.
1. 한 번 생긴 습관을 처음처럼 없애는 건 너무 어렵다. 현재에도 행동변화를 위한 여러 이론이 난립한 상황이며 확실한 단 한가지 이론만 있지는 않다. 다만 이 책에서는 환경, 습관, 목표지향적 행동이라는 세 가지 기준을 제시한다.
2. 환경 : 환경을 변화함으로써 우리가 어떤 행동을 더 쉽게 하도록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교회보다는 술집에서 흡연이 더 쉬운 행동이다. 변화를 원하는 습관이 있다면 주변 환경을 면밀히 살펴봐야 한다.
3. 습관 : 습관은 지속성이 있다. 이는 우리가 행동을 변화시키는 데에 어려움을 준다. 나쁜 습관의 촉발제는 축소하고 좋은 습관은 더 잘 되도록 '선택 설계'해야 한다.
4. 목표지향적 행동 : 장기적 목표를 이루기 위한 행동은 충동과 습관을 고치기 위해 많은 주의력과 집중력, 자제력이 필요하다. 변화에 관한 실행법/특정 상황에 대한 대응법을 상세히 세운다.
5. 휴리스틱 : 유혹에 넘어갈 지 참아야 할 지 선택하여 결정하도록 하지말고, 엄격한 규칙을 사용하여 선택할 여지가 없도록 해야 한다. 인간은 의외로 빠르고 간소한 결정 전략을 사용해서 의사 결정을 한다. 따라서 '엄격한 규칙'은 복잡하지 않아야 한다.
6. 트리거 경고 : 습관은 주변 환경 신호에 쉽게 촉발된다. 따라서 습관의 촉발제가 작용하지 못 하도록 환경을 변화시키는 전략(보통 장소 옮기기)이 유혹을 물리치기 위해 매 순간 우리의 의지를 사용하는 전략보다 쉽다.
7. 자제력 훈련은 별 효과가 없다 : 훈련을 통해 자제력을 향상시킨다는 개념은 여러 연구결과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8. If-then plan : '--이면 --하겠다'라는 계획인 이프-댄 플랜이 행동 변화의 효과를 향상 시킨다. 이를 실행 의도라고 하는데 계획이 구체적이고 상세할수록 효과적이다. 또한 행동 변화를 지속적으로 관찰할수록 성공하기 쉽다.
정리하자면, 습관 그 자체에 대해 더 상세히 알고 싶은 사람이라면 한번 쯤 읽어볼 만한 좋은 책이지만, 문해력이 좋은 사람이 아니거나, 배경지식이 적은 사람은 시간이 꽤 걸릴 책으로 보인다. '습관'에 관한 내용 자체는 꼼꼼하고 좋다. 여담이지만 그 유명(?)한 앤절라 더크워스의 『그릿』도 한번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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