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모스 특별판
칼 세이건 지음, 홍승수 옮김
사이언스북스
그 유명한 책, 코스모스를 드디어 읽었다. 조금 부끄럽지만 이 책을 산지가 거의 7년쯤 된 것 같은데(기억도 안 난다) 책장 속에서 잠들어 있다가 이제야 완독 했다. 나름대로 과학에 관심이 많다고 생각했던 내가 왜 이제야 읽게 되었을까. 사실 나만 그런 건 아니겠지만 코스모스를 포함한 두꺼운 교양과학서들의 공통적인 문제가 바로 진입장벽이라고 본다. 소설책이나 자기 계발서는 부담 없이 쉽게 읽기 시작할 수 있는데 과학서는 사놓고도 기어이 읽어야겠다는 독한 마음을 먹어야 비로소 펼치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200-300쪽 정도의 가벼운 책이 아닌 500쪽을 넘어서는 책은 들고 다니기도 쉽지 않다. 학교 다닐 때는 다른 전공서도 많으니 들고 다닐 엄두도 못 냈는데, 몇 년 동안 묵묵히 꽂혀 있던 이 책을 우연히 최근에 보니 잊고 있던 숙제가 생각나서 얼른 읽었다. 사실 꽤 두꺼워서 금방 읽지는 못하고 대략 두 달 정도 걸린 걸로 기억한다.
책 내용은 내가 말하지 않아도 나보다 훨씬 더 잘 요약한 포스팅이 많으니 굳이 요약할 필요는 없을 것 같지만 아주 간단하게 말하자면, 천체 물리학자인 저자의 우주(Cosmos)를 배경으로 한 대중과학서, 또는 수필이다. 내가 왜 수필이라고 했냐 하면, 저자의 뛰어난 글쓰기 실력 때문이다. 솔직히 번역 문제 때문인지 각각의 문장과 단어 사용이 뛰어난 지는 모르겠지만 문장의 배치나 문단의 구성이 깔끔해서 읽으면서 감탄을 했다. 예를 들면 7장을 보면, 처음에는 어렸을 적 별에 관한 책을 읽었던 일부터 불을 발견했을 때쯤 조상들이 별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을지, 고대 이오니아 지방에서 어떻게 과학이 발전했고 그 시절 유명한 과학철학자와 고대의 우주관의 소개부터 암흑시대를 거쳐 근대 이후의 과학관(주로 천문학)을 박식하게 설명했다. 8장에서도 별자리 이야기부터 상대론과 같은 우주여행에 관한 기초적인 이야기와 오리온 계획을 거쳐 행성의 형성과정까지 쉴 새 없이 이야기한다. 사실 각각의 주제 하나만 봐도 깊고 자세하게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지만 저자는 한 가지 주제만 깊이 이야기하지 않고 지루할 틈도 없이 주제가 휙휙 돌아가서 읽다 보면 정말 여행을 하며 옆에서 지루할 틈 없이 이야기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만약 이 책이 전공서였다면 한 단원에서도 주제가 너무 많이 바뀌어서 뭘 공부해야하는 지 알 수 없는 단원이겠지만, 교양과학서이다 보니 긴장 풀고 흘러가는 대로 읽으면 된다. 1980년엔 지금처럼 인터넷으로 자료도 쉽게 찾지 못했을 텐데 그의 박식함과 문단 구성이 놀랍다. 이래서 베스트셀러라고 하는 걸까. 700쪽에 가까운 양인데도 계속 재미있게 읽었다. 다만 독서시간이 짧아서 오래 걸렸을 뿐...
이 책은 학교에서 배운 '과목'으로서의 과학을 넘어서서 세상을 바라고는 관점에 큰 변화를 줄 수 있는 책이다. 학교에서 물리학, 생물학에 대해 나름대로 대한민국 평균보다는 깊이 공부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내 주변에서 같이 공부하던 친구들을 보아도 이 지식을 삶에 통합적으로 적용(?)해보려는 친구들을 많이 못 본 것 같다. 물론 내가 깊이 있게 얘기 안 해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지식은 지식이고 삶에서 쓰이는 가치관(또는 철학)은 가치관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수업시간에는 "핵융합이 이런 원리로 됩니다", "이런 생명들 간의 차이는 이렇습니다" 이런 걸 아무리 외워도 삶을 바라보는 관점에서는 아무런 통찰을 주지 못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 그런데 코스모스는 우리가 수업시간에 따로 배웠던 많은 지식을 조각낸 다음, 다시 하나로 기워서 우리의 삶과 우주에 대해 다시 이야기하는 느낌이었다.
사실 학교에서 배운 지식들인데도 미처 이걸 생각해보지는 않은 주제들이 많았다. 그 많은 원소들은 언제 어떻게 생겨났는가? 우리와 전혀 다른 환경에 사는 생명체는 우리와 얼마나 다를 수 있을까? 책을 읽으며 한번쯤 상상해볼 수도 있었을 주제들이 많이 나와서 신기했다.
천체물리학에 관한 내용 말고도 여러 가지 주제, 예컨대 과학사나 이집트 상형문자에 관한 이야기 등을 보면 그는 꽤 부지런한 지식인이었을 것 같다. 지금이야 인터넷에 치면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링크에 링크를 타고 쉽게 접할 수 있지만 그 시절에는 열심히 책과 논문을 뒤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우주라는 한 가지 주제와 이와 관련된 흥미로운 여러 가지 사실들, 그리고 쉬운 설명까지 합쳐진 명저이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이 광활하고 무한에 가까운 우주에서 우리는 참 작은 존재구나'. 한편으로는 '우주 어딘가엔 우리의 이웃(또는 경쟁자)인 문명이 있을 수 있겠구나'라는 것을 느꼈다. 사실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돈을 벌다 보면 매일매일 하루를 살다 보면 우주가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지, 우리 주변의 자연현상은 어떤지 순수하게 호기심을 가지고 생각하는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다. 더 당장 중요한 일도 많고, 시급한 일도 생기고, 재미난 프로그램도 많기 때문이다. 어쩌면 의무감에 코스모스를 펼쳐보긴 했지만 한동안 잊고 있었던 자연에 대한 호기심이 다시 생겼다. 내친김에 쿠르츠게작트라는 유튜브 채널도 구독했는데 호기심을 채우는데 꽤 많이 도움을 주고 있다. 책 읽는 것도 좋지만, 꼭 책만 읽을 필욘 없으니까.
책 내용과 별개로, 번역에 관한 논란이 조금 있는 것 같은데 결론적으로 말해서 나는 이 책을 읽을 때 불편하거나 이상한 점은 없었다. 사실 책의 내용 자체는 나에겐 버거운 수준이 아니라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과학지식이 완전히 없는(?) 분들에겐 그 자체가 장벽으로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고, (영어 기준으로) 읽기 쉽게 쓰인 문학책에 가까운 과학서적이라는 명성에 비해 번역도 조금 읽기 힘들게 되어 있다는 일부의 주장이 있는 걸 보면 정말 잘 번역된 책은 아닐 수도 있겠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원문의 느낌과 차이는 있을지언정 완독에는 문제가 있진 않았다. 좀 더 찾아보니 원서는 1980년에 써졌는데 왜 2000년대에 다시 번역되었지 하는 생각에 검색해보니 요즘 판매되는 판본이 아닌 다른 사람이 번역한 판본이 있었다고 한다. 칼 세이건의 책 내용과는 별개로 번역으로 말이 많은 것 같다(링크).
이 책의 내용과 별개로 우주를 주제로 한 다른 책과 칼 세이건이 쓴 다른 책(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등)도 몇 권 더 읽어보고 싶다. 예전에 리처드 도킨스의 서적을 몇 권 읽었을 때 칼 세이건의 이야기가 몇 번 나와서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가끔씩 "코스모스를 읽고 고등학교 때 이과를 갔어요"와 같은 말을 살면서 몇 번 들었는데 이 말이 이해될 정도로 잘 쓴 책이다. 내가 좀 더 일찍 이 책을 읽었다면, 나 역시도 삶이 많이 바뀌었을까? 살면서 한 번쯤은 읽어야 하는 책이라고 본다. 난이도로 보나, 전공 선택과 관련한 점에서 보나 나는 이 책을 고등학생에게 더욱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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