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2021.09.07, 투자자로 살겠다는 마음가짐

코리안더 2021. 9. 8.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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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가지 상황을 가정해보자. 만약 미끄러운 경사로에서 쇠구슬을 하나 놓는다면 당연히 낮은 곳으로 굴러 떨어질 것이다. 경사를 조금 완만하게 하거나 기울기가 일정하지 않다고 하더라도 대개 쇠구슬은 큰 문제없이 아래를 향해서 갈 것이다. 길목에 큰 턱을 만들면 구슬이 튀어서 경로를 이탈할 수도 있지만 다시 안착해서 가던 길을 계속 갈 수도 있을 것이다. 구슬의 움직임을 물리학으로 정밀하게 예측할 수도 있다. 처음 구슬의 운동에너지와 위치에너지를 파악할 수 있다면 어떤 지점을 어떤 속도로 통과하고, 어느 지점까지는 넘어갈 수 있는지, 어디에서 한 번쯤 정지하거나 어느 높이까지 튕겨나갈지 대략 알 수 있다. 물론 완벽한 계산이 쉽진 않겠지만 말이다. 길이 어찌됐든 일단 경로를 보면 구슬이 어떻게 갈지 우리가 본능적으로 머릿속에서 상상해 볼 수 있다.

 


 

 2021년 9월로 군대에서 전역한 지 2년이 지났다. 대학교를 졸업한지는 4년, 운이 좋은 건지 내 인생이 그렇게 흘러갈 예정인 건지 짧은 기간에 생각보다 다양한 일을 해보았다. 

 처음에는 대학원에 진학했다. 내가 꿈꾸던 미래는 당연히 연구자로서의 삶이었다. 열심히 공부도 하고 좋은 성과도 내서 회사를 가든, 학계에 남든, 기술창업을 하든 물질적, 사회적 성공이 내 목표였다. 그땐 공부+근면성실이 좋은 결과와 선형관계인 줄 알았다. 현실이 어떤 줄 몰랐다. 순진했다.

 중간에 대학원을 나왔다. 지금 생각해도 잘 한 선택인지는 모르겠다. 조금 충동적으로 나온 것 같기도 한데, 그렇다고 지금까지 거기 남아있는다고 해서 뭔가 잘 풀렸을까?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그때 이야기는 나중에 따로 하기로 하고, 아무튼 당연하게도 대한민국 남자기 때문에 군대에 가야했다.

 입대하기 전까지 남은 시간을 그냥 보낼 수는 없어서 취직했다. 아주 큰 곳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규모가 있는 곳에서 대략 6개월 일하면서 소중한 사회 경험을 쌓았다. 이 시기도 이야기할 건 많은데, 나중에 해야겠다.

 2018년 1월, 입대했다. 전역까지 약 1년 8개월동안 참 많은 일이 있었다(원래 1년 9개월이었는데 정말 운 좋게도 군 복무기간 단축으로 4주 정도 단축되었다). 심지어 입대하고 1년 정도 지나서는 제한적이나마 휴대폰 사용도 허용되어서 초반에만 조금 힘들었지 일병 꺾이고 상병 달 때쯤부턴 군생활을 재미있게 했다. 심지어 남들의 군생활은 대개 젊음을 희생하는 일에만 그치는 경우가 많았는데(물론 본인의 의미부여 여부도 큰 요인일 것이다) 졸업하고 입대한 난 다행히도 내 전공을 살릴 수 있어서 단순 시간 때우기로만 군생활을 보낸 게 아니었다. 지금도 돌이켜보면 군생활을 보람차고 재미있게 했다.

 

 전역하고 나선 취직 준비를 했다. 약 2달동안 컴활도 따고 영어공부도 했는데 이것도 생각해보면 너무 당연하게 흘러간 것 같다. 난 장사가 싫었다.  돈이 급해서 잠깐 일 할 수는 있어도 평생 자영업을 하면서 손님들과 정신 소모하면서 시간 보내고 싶진 않았다. 다시 대학원으로 갈 수는 없을 것 같고, 자영엽의 세계로 나가고 싶진 않으니 일단 회사로 방향을 잡았다. 그리고 이왕 사는 거, 회사생활 한 번 해보는 것도 경험이지 않겠는가. 다행히도 회사생활이 맞을 수도 있지 않을까했다. 이 쪽에서도 잘 풀리면 내가 원하는 쪽의 공부를 할 수도 있을 테고.

 운 좋게도 어렵지않게 취직은 했는데, 반년 정도 있어보니 좀이 쑤셨다. 여기도 사람 사는 세상인지라 위쪽 상사들은 나름대로 말이 통하는 사람이었는데 바로 위의 사수가 너무 힘든 사람이었다. 동료는 좋았지만 일이 너무 많았다. 출퇴근은 길고, 월급은 적고, 일은 다람쥐 쳇바퀴 굴러가듯 느껴졌다. 아니 쳇바퀴가 다람쥐를 억지로 돌리고 있다고 해야할까?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건강도 좋지 않았다. 그래서 또 그만뒀다.

 정말 당연하게도 내가 갈 길이 정해져있었다. 이제 남은 건 자영업이었다. 이렇게 나왔으니 장사판 말고는 내 전공을 살려서 할 만한 게 없었다.  코로나 때문에 두어 달 쉬면서 주식공부도 좀 하며 취직할 곳을 찾아봤다. 곧 집에서 아주 멀진 않은 곳에서 일할 수 있게 되었다.

 나름 만족스러웠다. 회사 다닐 때보다 출퇴근도 훨씬 편해졌고 근무 시간의 업무 스트레스는 있을지언정 퇴근하고 나서까지 압박적이지는 않았다. 월급도 만족스러웠고 고용주도 상식적이고 말이 통하는 분이었다. 동료 직원들도 전반적으로 괜찮았다. 다만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었다. 한 달의 절반 정도는 정말 쉴 새 없이 몰아쳤는데 오래 서있어야 한다는 게 가장 힘들었다(그리고 허리도 아팠는데 아마도 이건 운전 때문이 아니었을까).

 언제까지 남 밑에서 일할 수는 없었다. 몸이 너무 혹사 당하는 느낌이라 빨리 내가 직접 창업하고 싶었다. 그래서 적당히 괜찮다 싶은 매물을 계속 보다가 결국 인수해버렸다. 일하던 곳에는 가게를 차렸다고 알리고 그만두었다. 비록 작은 가게라도 내가 주인이 되면 전보다는 한결 편해지겠지 하는 마음이 있었다. 처음 몇 달간은 정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중간에 살펴보고, 뒤돌아보고 그럴 틈이 없었다. 바다에 빠지면 일단 눈에 보이는 섬으로 본능적으로 달려가려고 하듯, 일단 정리하고 청소하고 시스템을 만드는 일에 정신이 없었다.

 그리고 인수 후 대략 6개월이 흘렀다. 한동안 코로나19때문에 사람도 너무 없었을뿐더러 어느 정도 정리가 끝나니 뒤돌아볼 여유가 생겼다. 어느 정도 내 예상과 비슷하게 운영되고 있었다. 생각보다 초기 투자금을 좀 더 쓰고 체력적으로 심리적으로 힘들다는 점을 빼면 이번 건은 사기당한 정도는 아니라고 평가할 수 있다. 또한 아직 완전히 끝난 게 아니니 이 사업을 완전히 평가하기는 아직 이른 시점이기도 하다. 원금 회수도 못한 상황이니까. 

 그래도 이건 아니다. 대학교를 졸업할 바로 그 때, 처음으로 돌아가서 내가 정말 원하지 않던 바로 그 일을 지금 하고 있었다. 손님들과 입씨름하며 내 젊음과 정신을 소모하고, 체력적으로 힘든 일에 하루 종일 매여서 녹초가 돼서 하루하루를 마감하고 싶진 않았다. 솔직히 몇 개월, 몇 년(도 긴 거 같지만) 정도는 할 수 있겠지만 평생 하라고 하면 도저히 못하겠다. 빨리 이 생활을 청산해야 한다. 다행히도 힘든 일이라도 적당히 무심하게, 적당히 참는 성격이라 탈출 가능한 시기까지 약 12개월의 시간이 남아있다. 다시 한번 군대에 왔다고 생각하고 빠릿빠릿하게 계획을 짜고 실행해서 나의 다음 업(業)을 준비해야 한다.

 사람들과 상대할 일 적고 대인스트레스 덜 받고 적어도 내 시간이 보장이 되는 일은 어떤 게 있을까? 그러면서도 몸이 고되지 않으면서도 위험하진 않아야 한다(난 하루 종일 머리 쓰는 일은 좀 할 수 있을 것 같다). 돈도 너무 적게 벌리면 안 된다. 크게 안 벌어도 좋으니 먹고살 만큼은 벌고 싶다(크게 성공할 수 있으면 훨씬 좋다!). 그런 일이 있긴 할까? 물론 많은 사람들이 이런 일을 다들 원하니까 쉽게 달성하지는 못하겠지만,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 직업이 바로 투자자인 것 같다.

 대학원을 자퇴할 때쯤 우연히 '돈을 벌려면 돈 버는 일을 해야한다'는 구절을 보았다. 맞는 말이다. 그 말이 뇌리에 박혀서 군대에서도 주식 투자하는 법을 조금씩 공부했었고, 취직하고 나선 투자를 실제로 시작했다. 다만 코로나19에 한번 박살나보고, 정작 딴일 하느라 황금같은 기회에 제대로 투자를 못 했을 뿐(뭐 이것들은 사실 게으른 변명이다).

 돈을 벌려면 돈 버는 일을 하고, 돈 버는 법을 공부해야 하는데! 너무나 단순한 진리인데 이 말을 알게 된 후에도 본격적인 투자를 피일차일 미루고 있었다. 이때까지 난 갯벌에서 산삼을 찾았고 애플 매장에서 갤럭시를 찾고 있었다. 내가 과거에 선택한 그 분야들을 돌이켜보자. 학계에서 성공한다고 돈을 많이 벌 수 있을까? 보통 사람보다 조금 더 많이 벌면 성공한 것이다. 회사생활에서 순탄하게 진급하면 성공한 것이다. 남들 밑에서 일하는 건 안정적인 뿐, 그 자체로는 물질적 성공을 보장할 수 없다. 다들 '돈벌이' 그 자체가 최고의 목표인 일들은 아니었다. 돌이켜보면 내가 원하는 그 일을 삶의 많은 변곡점에서 시작할 수 있었는데, 미루다 보니 이렇게 시간이 지났고 또 다른 기회를 놓쳐버렸다. 물론 그 기회를 잡지 못하고 흘려보냈을 수도 있었겠지만, 복권에 당첨되려면 일단 복권을 사야 하는데 나는 복권을 사지도 않고 있었던 것이다.

 내 시간은 중요하다. 내 사업을 하게 된 지금은 시간도 없고 큰 보람도 없다. 심지어 돈도 없다. 인생에서 한번 쯤 경험해보는 것 이상의 이유는 없는 듯하다. 지금의 이 일을 하면서 별로 행복하게 지내고 있는 건 아닌 것 같다.

 물론 투자자가 된다고 항상 인생이 행복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아마 생각보다 훨씬 더 힘들고 외로운 길일 것이다. 실패할 수도 있다. 작은 사업을 직접 해보니 모든 게 내 예측대로 흘러가진 않더라. 생각보다 너무 많은 변수가 있고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요소도 많다. 아니 그럴 수 없는 게 거의 대부분인 것 같다.

 그래도 난 투자자가 되고 싶다. 난 애초에 투자자 같은 삶을 살고 싶었다. 그 때는 다른 직군으로도 그렇게 살 수 있는 줄 알았다. 그걸 깨닫는 게 느렸을 뿐... 지금부터라도 투자자로서 살고 싶다. 사실 세상에는 젊은 투자가들이 생각보다 많은데, 그렇게 성공한 사람들을 내가 못 만나봤을 뿐이라고 본다. 내 10대와 20대가 그러지 않았나? 내가 넓게 경험하지 못해서 다양한 층위의 세계를 놓쳤다. 내가 꿈을 꾸지 못했다고 해서 그런 꿈같은 세상이 실제로 없다고 믿으면 안 된다. 내 성향을 고려해보면 마치 쇠구슬이 당연히 높은데서 낮은 곳으로 흘러가듯, 내가 지난 몇 년 간 다른 선택의 순간에서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순서만 바뀔 뿐 언젠가는 이 자리로 올 것 같았다. 학생으로, 직장인으로, 자영업자로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게 아니라 언젠가는 투자자로서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을 것이다.

 사실 나는 성공한 투자자가 되고 싶었다. 그리고 나는 성공한 투자자가 되고 싶다.

 

 내 다음 업은 훨씬 더 준비를 많이해서 시작해야 한다. 좀 더 나이를 먹은 만큼 더 많은 경험을 쌓긴 했지만 투자의 세계는 또 다른 세계다. 남들보다 늦은 출발선에 서서 처음부터 시작하는 만큼 철저하게 준비해야 한다. 20대 초반처럼 젊지 않으니 정교한 계획이 아니더라도 플랜 B, 플랜 C도 염두에 둬야 한다. 물론 당장전업투자자로 살겠다는 것은 아니다. 아직은 발판이 없기에 발판을 만들고 서서히 전업투자자가 될 준비를 할 것이다. 자세한 사항은 조금씩 공부하며 블로그에 정리해보겠다. 어떻게 하면 소득의 주원천을 '투자'에서 만들어낼지 계속해서 공부하고, 고민하고, 투자해봐야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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