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만의 3천만원
글·그림 허영만
가디언
난 허영만 작가가 좋다. 그림체에 쓸데 없이 힘을 주지 않고 내용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10대 때 집에서 구독했던 동아일보에서 식객을 연재해서 가끔씩 보곤했다. 그리고 만화를 즐겨보긴 않는 편이라 그가 만화계에서 어떤 위치를 가지고 있는지, 만화가 명작인지 딱히 얘기할 만한 건 없다. 다만 확실한 것은, 그가 선택하는 주제가 조금은 특별해서 인상 깊다는 점이다.
이전의 만화였던 '식객'을 보자. 한국 요리를 주제로 그린 만화인데, 요리 뿐만 아니라 식재료와, 그에 담긴 여러 인간 군상이 담겨 있어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참신한 재료 덕분에 드라마와 영화로도 나왔으니 만화로서도 성공한 편일 것이다. 다른 작품 '꼴'도 인상 깊었다. 관상을 주제로 했는데 그 작품엔 여러 특별히 기억나는 중심 스토리는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여러 '상'을 이야기하며 이런 상은 이런 성격, 저런 상은 저런 유형 이야기했던 기억이 있다.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그래도 관상보다는 심상(心相)이 더 중요하다" 라는 이야기다. 이에 대해 말은 많이 하고 싶지만 줄이겠다.
아무튼, 이번에는 주식투자를 주제로 만화를 풀었는데 솔직히 말하자면 몇몇 고수들의 주식투자 중계기(記)라고 할 수 있다. 중간중간에 주식과 관련한 격언을 만화로 풀어내긴 했는데 특별히 독창적이거나 중요한 얘긴 없다. 어느 책을 보나 나올만한 격언이었다. 그래서 머릿속에 확 들어오는 건 없지만 크게 부담가지지 않고 술술 읽어나갈 수 있는 매력이 있다.
이 책이 주식초보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이유는, 고수들의 투자 방법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주식시장에서 소위 말하는 '고수'인지 아닌지는 수익률로 간단하게 알 수 있다. 저자는 증권사 소개를 통해 6명의 고수들은 섭외했는데 아마도 이들의 수익률은 증권사가 알고 있으니 적어도 사기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중간에 몇몇 분들이 그만하긴 했지만, VIP투자자문의 최준철, 쿼터백 자산운용, 우담선생, 하웅, 이성호, 김태석(남산주성) 등이 참여했다. 투자 방법은 주식 고수들의 조언에 따라 허영만 화백이 1인당 6백만원 선에서 직접 매매를 한 후, 그 수익률을 정기적으로 공개한다. 투자자들은 메신저를 통해서 연락을 하다보니 조금의 시간차도 있어서 그들의 의도대로 매매가 안되는 경우도 많았다. 물론 그런 매매실패도 주가처럼 한 가지 볼거리긴 하다.
6명의 주식투자 스타일은 모두 달랐는데, 전통적인 가치투자법 투자자부터 초단타 투자자와 자산운용사까지, 다양한 유형을 엿볼 수 있어서 도움이 되었다. 데이터를 기반으로 매매하는 자산운용사의 투자방법도 신기했고, 가치투자를 하시는 분이 어떻게 기업을 판단하고 매수를 하는지, 스캘핑을 하는 고수들은 과연 어떻게 수익을 내고 손실을 입는지도 볼 수 있어서 도움이 되었다. 가치투자자들이 흔히 이야기 하는 점이 '단타로는 크게 성공하지 못한다'인데, 그렇게 성공한 분도 있고, 실제 수익률도 꽤나 준수하게 나온 것도 인상깊었다.
가장 신기했던 건 단타를 할 때 과감하게 손절한다는 점이고, 때로는 시장가로 빠르게 매수를 할 때도, 때로는 지정가로 매매가 될때까지 기다리는 모습도 보였다. 또한 어떤 분은 장이 열리기 전에 새벽부터 매매준비를 하고, 어떤 분은 (본인 말로는) 그래프도 안보고 매매하기도 했다. 다양한 유형의 투자자를 보며 '투자에 정답이 있는가?, 투자와 투기의 실질적인 차이는 무엇인가?'와 같은 고민이 들기도 했다.
만화 내용은 사실 별 것 없고 카톡 대화창 같은 화면으로 매매주문이 대부분이다보니 3권을 넘을 때쯤엔 흥미가 조금 떨어졌다. 내 투자에 활용하기엔 이미 시간이 너무 지났고, (그들의 진짜 운영 계좌는 따로 있으니) 만화에 나온게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대부분 단기 매매이다보니 크게 도움되지도 않았다. 그저 "아, 고수들도 손실을 입는구나"정도와 특정 기간에는 수익률이 마이너스인 상태도 있구나 정도였다.
4권이 '3천만원'의 마지막인데 후반에는 만화에 힘이 딸리는건지 작가가 투자종목을 독자들에게 구걸(?)하기도 하고, 초반부의 흥미진진함도 떨어지면서 흐지부지 만화가 마무리되는 느낌이 들었다. 또한 격언도 별 게 없어서 그런지 재야 고수들의 성공기(?)를 그리기도 했는데 차라리 주식격언보다는 이런 인터뷰를 그리는게 훨씬 더 읽을만 했다.
마지막엔 투자종목을 모두 매도해서 정산했는데, 약 1년간 최종 누적 수익률을 보면 이성호 씨는 -4.54%, 허영만 화백은 -10.74%(초반엔 우담 선생이 투자했는데 개인적 사정으로 하차하면서 그 계좌를 받아서 직접 투자했다), 최준철 씨는 8.89%, 쿼터백 자산운용은 3.87%, 하웅 씨는 166.91%였다. 같은 기간 코스피는 -4.99, 코스닥은 20.65%의 변동이 있었는데 이들의 수익률을 보며 몇가지 생각이 들었다.
1. 단타도 가능성이 있다 : 많은 사람들은 기업 공부도 하지 않고 단타를 많이 하고, 또 많이 망한다. 그래서 주식판에서 승리하려면 장기투자만이 정답이라고 하는데, 대세가 조금씩 하락하는(정확히는 박스권?) 시기에 약 167%의 수익률을 거둔 하웅 씨의 단타가 독보적으로 눈에 띄었다. 상대적으로 장기투자를 하던 최준철 씨와 쿼터백의 수익률이 코스피 평균보다 높긴 했지만 큰 차이를 내고 있었다는 점에서 굉장히 눈에 띄었다. 뭐, 그래도 난 단타 안할거다.
2. 시기에 따라 수익률이 다르다 : 주식판에서 운의 영향이 매우 크긴 하겠지만, 역시 비슷하게 단타를 하는 투자자 끼리도 수익률에 많은 차이가 있었다. 물론 본인들의 실제 운용계좌에서는 엄청난 이익을 봤을 수도 있지만, 어쨌든 드러난 종목만으로 봤을 때는 아무리 고수들이라도 미끄러질 수 있는 시기가 있다고 느꼈다.
3. 공부는 안하면 안된다 : 하다못해 차트 보는 법이라도 열심히 익혀서 수익률을 높여야 하는데, 상대적으로 주식 초보자를 대변하는 역할처럼 보였던 허영만 화백의 투자를 보면 예상대로 시장하락률보다 수익률이 더 크게 떨어졌었다. 작가가 정말로 깊이 공부하고 투자한 종목이었다면 실례되는 말이겠지만, 뇌동매매와 종목공부를 깊이 하지 않고 투자하면 저렇게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끄러울 수 있을텐데 종목과 투자 이유를 직접 모두 공개한 허영만 화백이 고맙게 느껴졌다.
4. 거래가 빠르다. 손절이 과감하다 : 매수 주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취소도 하고, 바로 매도 하며 손해를 보기도 하는 광경을 많이 보았다. 왜그런걸까? 아직은 모르겠다. 그리고 매수 후 단기에 팔아서 몇 만원의 이익도 빠르게 챙기는 광경도 인상 깊었다. 물론 가장 인상 깊은 건 하웅 씨의 '에스모' 매매를 통한 수익이었다. 약 3일만에 거의 30% 정도의 이익을 얻는 걸 보고 결국 팔아야 내 돈이 되는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5. 미래는 아무도 모른다 : 우리가 어떤 기업의 지난 주가 차트를 보면 발끝에서 사서 머리 끝에서 팔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막상 현재와 가까운 미래를 보면 어떻게 될 지 장담 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이 책을 읽는 내내 투자자들이 매매했던 종목의 2020년 9월 현재 주가를 보면 아찔할 때가 많았다. 물론 코로나19라는 초대형 사건이 있긴하지만, 당장 2020년 초로만 보더라도 '이 회사는 앞으로 성장가능성이 있습니다'라고 추천했던 종목을 보면 반토막 나있고, 단기로 팔아버렸는데 실제로 급등한(카카오 등) 종목을 보며 장기예측은 정말 힘들구나, 이런 고수들도 장기예측이 쉽지 않구나하는 점을 느꼈다.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지만, 결국 난 주식세계의 정공법인 장기투자를 통해 주식매매를 할 것이다. 본업도 있고 총알도 적고, 이쪽분야에서 일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착실하게 기업을 공부하고, '좋은 기업'을 '싸게 매수'한다. 그리고 적정 가격이상이 되었을 때 매도를 한다. 이게 핵심이다. 즉, 나에겐 좋은 기업을 찾고 적정 가격을 계산하는 것이 먼저다.
주식에 관심이 생겼는데, 다른 필독서를 읽어본 초보자라면 한번 쯤 쉬어가는 기분으로 읽어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주식에 대한 내용이지만 머리써서 볼 내용도 없고, 만화책이다보니 종이는 빠르게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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