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 새벽 4시 반
웨이슈잉 지음
이정은 옮김
라이스메이커
이 책도 하버드 마케팅의 일종으로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일까? 예전에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를 통해서 아이비리그의 강의들이 책으로 엮여서 우리나라 서점계에 상륙한 일이 있었는데, 이 책은 그런 책처럼 지식을 전달하기 보다는 '하버드 생들은 어떤 마음가짐으로 생활하나?'를 중점으로 쓴 책이다.
'하버드 새벽 4시 반'. 제목만 딱 들어보아도 그사람들이 새벽 4시 반에 무엇을 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물론 당연히 공부겠지만...). 책은 하버드생들이 어떻게 생활하는지, 그리고 그들의 마음가짐이 어떤지를 챕터별로 얘기하는데, 솔직히 그냥 주루룩 나열하는 방식이라서 별로 재미는 없었다. 그저 상투적인 자기계발서의 내용과 같다고 보면 된다. 예를 들면 '너무 늦어서 못할 일이란 없다', '뛰어난 자가 아닌 열정을 가진 자' 등 각 절의 제목만 보아도 어떻게 하라는 건지 다 알 수 있을 정도다(물론 이게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각 장과 절의 제목만 보아도 책을 잘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핵심을 잘 요약한, 잘 정리된 책이란 의미일테니). 다만 여기서 말하는 내용을 다 지키는 사람이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도 열심히 하고 저것도 잘해보고 부지런히 살고 용기를 가지고 꾸준히 배워나가라...등등 참 좋은 말들이 많은데 이건 다른 자기계발서적들에도 충분히 있는 얘기들이 아닌가? 좋은 것만 너무 많이 모아놓으니까, 오히려 이 책이 하려는 말이 무엇인지 조금 헷갈린다. 좋은말도 두어가지만 해야 잘 실천을 하지...(물론 여기 나온 걸 다 실천을 안해도, 몇 가지만 잘 실천해도 좋은 미래를 만들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내 생각엔 이 책이 요즘 우리나라에서 잘 팔리고 있는 이유가 아이비리그 마케팅과 중고생들이 공부를 열심히 하도록 학부모들이 사주려는 의도가 합쳐져서 나타난 결과라고 추측한다.
물론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내용들이 나쁜건 아니고, 오히려 당연히 지키면 좋을 것들을 이야기해준다는 점에서 살다가 잊었던 것들을 다시 발견하는데 도움을 준다고도 생각을 해봤다. 그렇지만 그점에서도 용납(?)할 수가 없었던 게 책에서 예시로 드는 것들이 너무 조잡하다!
예를 들면...
옛날에 대대로 장사를 하며 재산을 모은 부자가 있었다. 그는 장사를 싫어했지만, 가업을 이어받기 위해 영리한 머슴을 고용했다. 처음에는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하던 머슴은 주인이 장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고서, 자신이라도 더 열심히 장사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다. (중략) 그러던 어느 날, 이 부자의 집에 강도가 들어 집에 있던 금은보화와 돈을 모조리 훔치고 곳간에 불을 질렀다. (중략) 그 후 머슴은 어떻게 되었을까? 시간이 흐르자 그의 가계는 점점 커졌고 머슴은 거상이 되었다. 그러나 예전에 머슴을 고용했던 부자는 거지가 되어 구걸이나 하면서 살아가게 되었다.
위와 같은 이야기를 사례로 드는데, 도대체 실제로 일어난 일인지 아니면 우화인지, 작가가 상상한 건지 도저히 모르겠다. 책에는 이 사례 말고도 거의 각 절마다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 정도는 양반이고 너무나 유치한 우화도 많이 있다. 읽어보면 좀 황당한 게 딱 중학생들이나 읽을 만한 수준... 출처도 없고, 정확한 인명도 없다. 그냥 "옛날에", "어느 누군가" 와 같은 식으로 나온다. 심지어 책의 257페이지에는 미국의 유명한 카레이서인 지미 해리보스라는 사람의 이야기가 있는데(화상을 입었음에도 우승에 차지했다고 한다), 궁금해서 구글에서 아무리 검색을 해보아도 그런 사람은 나오지 않았다. 구글은 영어로 단어를 치면 검색결과가 없거나 적으면 단어를 수정해서도 검색을 해주는데 아무리 여러 단어들을 조합해서 넣어도 그런 사람은 나오질 않았다(혹시 아는 분 있으면 댓글이라도 좀 남겨달라). 이 정도니 이 책의 사례를 못 미더운건 당연한 결과 아닐까?
또한 번역가의 문제인지 원 저자의 의도인지 중간중간 문장 간의 내용연결이 모호한 부분이 있었다. 다 읽고나서 다시 찾으려니 귀찮아서 못 찾겠고, 각 절의 제목과, 내용이 안 맞는 부분이 있으니 각자 읽으면서 찾아보면 될 것이다.
그래도 좋은 내용들이 많으니 장 별로 내용을 요약해보겠다.
1. 노력을 하라 - 천재가 아니더라도 노력하라. 자신의 한계를 넘어, 남들보다 더 열심히 하라! 게으름을 피우지 말고 사소한 일도 소중히 하라.
2. 당신은 할 수 있다 - 스스로를 믿어라! 내가 아니면 날 믿어줄 사람은 없다. 실패할 수도 있고 큰 난관에 부딪힐 수도 있다. 그러나 실패를 두려워하지말고 스스로를 믿고 나아가라. 한 번의 성공은 연쇄적인 성공을 부를 것이다.
3. 열정을 가져라 - 한 가지 일에 열정을 집중하라. 그러면 인생이 재밌어 질 것이다. 그러나 맹목적으로만 행동하지 말고 명확한 목표를 세워라.
4. 행동하라! - 절대로 미루지 말고 일단 행동하라. 너무 늦어서 못할 일도 없고, 하다보면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부지런히 하라. 그러나 효율도 생각하라.
5. 배워라! - 배움은 결코 손해보지 않는, 가장 안전한 재산이다. 배움의 고통은 잠시뿐이므로 겸손을 가지고 배워라. 그리고 배운 것을 실천하라. 또한 어설프게 알지 말고 완전히 알아라.
6. 유연하게 생각하라 - 창의력을 찾아라. 이 것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 평범한 일상에서도 충분히 찾을 수 있다.
7. 시간을 소중히 생각하라 - 시간을 최대한 아껴서 써라.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시간은 당신을 기다려주지 않으니 합리적으로 계획하라.
8. 자기관리를 하라 - 항상 나를 단련해서 자기를 엄격하게 통제하라. 그리고 과거에 너무 연연하지 말고 인성을 갖추어라.
9. 꿈을 가져라 -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말고, 응원하고 격려하라. 또한 꿈과 망상은 다르므로 실천하라. 여러 우물을 파지 말고 명확한 목표를 향해 노력하라.
10. 기회를 잡아라 - 기회는 쟁취하는 것이다. 기회를 잡아라 (?????)
내용을 요약하면서 생각해본건데, 성장가도에 있는 중국에서 학습에 대한 열망이 크다보니 그걸 격려하는 자기계발서가 중국에서도 유행해서 이 책이 나온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그렇다면 신자유주의가 고장나서 너덜너덜한 지금 상황에서 나온 이 책은, 조금 늦게 나온 게 아닌가 생각한다). 뭐 그런건 모르겠고, 좀 실망을 많이 하긴했는데 그래도 상투적이지만 좋은 내용이 많아서 금방 후루룩 읽어나가긴 했다. 내 돈을 주고 안사길 잘한 것 같다. 이런 책은 역시 도서관에서 빌려보면 족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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