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 퇴화 보고서
피터 매캘리스터 지음
이은정 옮김
21세기 북스
얼마 전 고대의 남성은 현대의 남성들보다 신체적으로 훨씬 더 강인하다는 내용의 글을 인터넷으로 보았는데, 그 글에서 든 출처가 이 책이라 매우 흥미로워서 빌려서 읽었다.
책의 초반부를 읽으면서는 ‘고대의 인류가 현대인보다 훨씬 더 강하다. 그 측정 방법은 다음과 같은 사료들에서...’이런 식으로 이야기가 나왔는데 뒤로 갈수록 신체적 능력 뿐만 아니라 말하기 능력, 육아의 참여, 다양한 성생활(?) 등을 이야기한다. 그래서 뒤로 갈수록 인류의 다양한 생활을 알 수 있어서 좋았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원하던 내용은 벌써 끝이 났나보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의 초반부에는 정말 놀라운 고대의 선조들이 나온다. 예를 들면 현대의 인간보다 훨씬 강한 팔힘을 가진 네안데르탈인 여성, 호주의 화석화된 호수 점토에서 발견된 누군가의 시속 37킬로미터 달리기 흔적(키194cm), 오늘날 올림픽 선수도 못 내는 시속 12킬로미터로 노를 젓던 고대 그리스의 평범한 병사들이 그 주인공들이다. 그들의 엄청난 체력의 비결은 개체 발생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 즉 현세대와 그들과의 유전적 차이는 미미하고(네안데르탈인 등은 제외하고) 하나의 유기체가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자라는 과정에서 그렇게 강한 체력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작가는 현대인들이 과거의 인류보다 근육량이 줄어들면서 뼈의 양과 강도가 40%가까이 감소했다는 것을 예로 들면서, 아테네 군함의 노잡이들이 받는 훈련은 현대 조정 선수에 비해서 훨씬 힘들고, 평생을 일하면서 훨씬 강한 뼈, 근육, 힘줄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생활사는 그리 멀지 않은 과거도 비슷했는데, 가령 19세기 중반 교량 건설 노동자들은 18킬로그램짜리 대형 망치를 하루 종일 두드리는 등 매우 오랜 시간을 힘든 육체노동을 했다고 한다. 물론 이들이 우리보다 덩치가 월등하게 큰 것도 아니었고(앞에서 예로 든 사람들은 대부분 170정도였다) 지금과 달리 유전적인 변이가 있는 인물도 거의 없다고 한다.
이런 것들만 보면 우리는 분명히 과거의 영광을 잃어버린 것 같다. 그렇다면 ‘허세’는 어떨까? 이 부분을 읽으면서 나는 인류의 논쟁적인 다양한 문화를 엿볼 수 있었는데, 가령 인류의 폭력성은 어떻게 설명해야할까? 난 예전부터 폭력성은 해결되어야만 하는 남성적 문화의 문제일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생각해보면 아주 과거에도, 그리고 원시적인 삶을 고집하는 부족에서도 모두광범위 하게 나타나는 문제들이라 머릿속이 조금은 혼란스러웠다. 가령 어떤 집단에서 벌어지는 입회식은 현대 남성적 문화의 폭력성을 드러낸다고 할 수 있는데 실은 브라질은 토착 부족인 마우에 족의 성인식, 카야포족과 케이요 족의 말벌 성인식, 삼비안 족의 신체 훼손 성인식 등, 고대의 문화를 간직한 많은 부족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었다. 그런 것 뿐만 아니라 옛날 북미 인디언들 역시 그들끼리 전쟁이 벌어지고 나서는 포로를 고문하고 학대한 이야기도 전해주고 있다(물론 그런 잔악한 고문을 놀랍도록 견디다 죽었다는 게 요지다.). 고대인의 황당한(?) 용기는 의술에서도 남아있는데 마취제가 발달하지 않았던 그 시절에는 그냥 참는 게 전부였다는 이야기도 한다. 그 중 내가 가장 놀랐던 것은 신석기인들의 두부 절개술이었는데 그 시절에 머리뼈를 뚫고 수술을 했다는 것도 신기하지만, 절반 이상이 살아남았다는 게 나를 더욱 놀라게 했다.
다시 고대인들의 싸움, 운동능력에 대한 부분을 보면서 인간의 신체는 생각보다 약하지 않고 정말 강인한 짐승의 신체와 같다는 것을 느꼈다. 현대의 종합격투기는 장난이라고 보일 정도로 살인적인 고대 그리스의 판크라티온, 로마 검투경기, 호주 원주민들의 싸움을 보면 그 잔인함과 공격성에 놀라면서도, 또 그것을 즐겼던(?) 그들이 대단하기만 하다. 이런 근접전투 뿐만 아니라 활쏘기나 투석에서도 대단한 자료가 쏟아졌다. 고대 몽골의 합성활을 이용해서 6초에 한번씩, 500미터 이상 쏘거나 투석으로 200미터 넘어 정확히 돌을 던지는 이야기, 35킬로미터 말과의 달리기 경주에서 승리한 기록, 중세 기사들의 점프(40킬로그램정도로 무장을 하고 1.5미터 정도의 말로 뛰어올랐다.)와 수메르의 왕 슐기의 달리기 기록(24시간에 350킬로미터 왕복)을 보면, 난 그들과 과연 같은 인류가 맞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고대의 운동경기 역시 실전을 방불케 하는(실제로 모의전쟁의 형태가 운동이라고 한다) 잔혹성을 보여주었는데 뼈가 부러지는 게 일상인 라크로스, 풋볼, 심지어 살인마저 자주벌어지던 많은 경기(라고 해야할까?) 등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현대 스포츠는 정말 신사적인 듯 하다. 또한 그 경기 역시 거의 전쟁에 가깝게 시행되었는데 앞에서 말한 판크라티온 뿐만 아니라, 아즈텍 원주민들이 9킬로그램에 이르는 고무공으로 하는 놀이 이야기(심지어 보호장구 중 하나가 27킬로그램이다.)를 들으면 이런 것도 하고 싶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한가지 재미난 사실은 서양만 이렇게 퇴화(?)한 게 아니라 동양도 마찬가지라는 점이다. 일본의 궁수 아시카와 유이치는 일본 전통 활쏘기 대회인 토시야를 재현하려고 했는데 이는 120미터의 복도에서 쏘는 시합이다. 그는 몇 달간 훈련했음에도 100번 중 겨우 9번을 맞췄는데, 1830년15살의 코쿠라 기시치는 1000번 중 978번, 1686년 와사 다이하치로는 24시간 동안 총 13053회중 8133번을 적중시켰단다.
그렇다면 그들이 왜 그렇게 공격적이어야 했을까? 저자는 고대의 전쟁이 직접적이고 정말 잔인했기 때문에 대단한 용기와 공격성이 필요했을 것이라고 말을 한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신체 능력은 놀라울 정도로 강인해야 했다고 한다. 그리고 현대의 남성이 여성에 비해서 더욱 공격적이고 굉장히 비이성적(?)인 이유가 이런 역사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과거의 여러 문화도 이야기해주었는데 놀라웠던 것은 그 시절의 운동선수들도 운동을 통해 엄청난 재산과 인기를 얻을 수 있었다는 점이다. 또한 승리를 위해서라면 반칙도 서슴치 않던 고대 그리스인, 하루종일 활쏘기만을 했던 몽골인 등 위의 이야기와 관계한 많은 생활사도 이야기한다.
책이 중반을 넘어서면서 말재주, 성적 능력 등 의외로 비교가 까다로운 부분도 비교를 하는데, 여기서부터는 비교에 조금 신빙성이 떨어지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과거의 구술문화가 놀라운 기억력을 발전하게 해주었다지만 모두가 그런건지는 모르지 않는가? 또한 성적 능력 역시 평균화된(?)수치들이 없다보니 주로 왕이나 운동선수의 예를 많이 들던데 그런 것도 애매하긴 마찬가지다. 어쨌든 그들의 구술문화와 관련된 이야기로 소크라테스가 떠올랐는데, 내 기억에 따르면 그는 책을 남기지 않았으며 그런 기록문화가 우리의 기억력을 후퇴시키고 존엄성을 해친다고 한다. 예전에 그 말을 들을 땐 저게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고, 마침 현대의 디지털 문화가 책을 밀어낸다는 경고를 여러차례 들은터라 조금 곱씹어보기만 할 뿐이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그의 주장이 정말 사실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육아나 성적능력 부분을 읽으면서는 인류의 문화가 정말 놀랍도록 다양하게 적응했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인류가 생각보다 성적으로는 정말 문란(?)한 존재라는 생각이 머릿 속에 들었다. 책을 읽는 내내 굉장히 더럽고, 문란하고, 변태적이고, 짐승과도 같다는 생각. 그러나 어쩌겠는가! 우리도 사실은 동물 중의 한 종일 뿐이고 어찌보면 저게 당연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면서 생각보다 나쁜건(?)아니라는 결론은 내렸다. 나도 좀 더 도덕심을 버리고(?) 살아도 사실은 나쁜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의 번역은 영어 원문이라면 굉장히 까다로웠을 듯 한 위트를 잘 풀어놔서 읽으면서 꽤나 부드러운 느낌이 들었다. 다만 몇몇 단어를 오역한 것이나, 단어 맞춤법이 틀린 곳이 몇 군데 있어서 완성도에 약간 아쉬움이 있었다. 그리고 아마도 저자가 원래 그렇게 쓴 듯한데, 전체적인 문맥도 이리갔다가 저리갔다가 하는 느낌이 든다. 다양한 사례를 드는 인류학 서적이니 이건 이해하고 읽어야 할 부분일까?
또한 저자가 인류학자이니까 과학에 조예가 깊다고 할 수는 있겠지만, 그런 고대의 기록들이 과연 생리학적으로 가능했던건지, 또한 그것을 현대인에게 적용한다면 생리학적으로 문제가 없지는 않을지 한번 쯤 고찰이 필요해볼 듯 하다. 그러니까, 현대의 생리학적인 지식으로는, 저탄수화물+고강도의 운동을 오래하면 횡문근융해증의 위험이 커진다고 하는데 과연 현대인들이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운동을 그렇게 강하게 한다면, 괜찮은걸까하는 생각이 든다. 또한 고대 그리스에서 노잡이 훈련을 몇날 며칠 쉬지 않고 한다고 했는데, 그 당시 사람들에게도 그건 위험한 일은 아니었을까? 그 당시에는 몸에 대한 지식이 부담하였으므로 위험부담을 가지고 많은 이들이 훈련을 했던 것은 아닐까? 그때도 그런 지식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훈련을 했던 것일까? 좀 더 추가적인 사료와, 현대 생리학의 도움이 있어야할 것 같다.
책을 읽는 내내, 그리고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계속해서 생각나는 구절이 있었다. 책의 프롤로그에 나오는 말인데, 한 고대 병사가 이런 말을 한다.
“우린 지금까지 피와 땀과 눈물을 모두 쏟아 부었는데……. 당신은 솔직히 좀 실망스럽군.”
분명히 현대의 인류는 과거 선조들이 쌓던 지식의 탑을 끝없이 쌓아올려서 이제는 누구도 그 전체모습을 한 눈에 볼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그리고 우리 몸에 내재한 폭력성과 잔혹성, 이기심을 제어할 만한 정체제도, 사법체계를 이룩한 것이 자랑스럽다. 그러나 인류 개개인의 신체를 보았을 때 우리의 몸은 책에 나온 것처럼 너무나 나약해지고, 게을러진 것이 아닐까? 저자도 에필로그에서 우리와 후손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순수한 의지 외에는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다고, 선조들이 물려 준 유전적인 유산을 갈고 닦아야 한다고 넌지시 말하고 있다. 우리는 좀 더 용맹해지고, 더 강인해지고, 더 똑똑해지고, 더 가정에 헌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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