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짧은 생각

코리안더 2012. 11. 30.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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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난 중학생 때 까지만 해도 안경을 쓰지 않았다. 그러다가 고등학교에 들어가고 나서부터 시력이 급격히 나빠지는 걸 느꼈는데, 진행이 어찌나 빠른지 입학하고 겨우 한 달 만에 안경이 없으면 칠판이 안보였다. 그 이후로 대한민국 안여멸의 생활이 시작되었다.(그리고 아직까지!)

처음에는 안경을 안 쓰면 안 되는 내가 정말 억울했는데 얼마 전부터 우연히 그 이유를 깨달았다. 매일 바로 코앞에 책이랑 모니터만 하루 종일 뚫어져라 쳐다보고, 저 멀리 있는 싱싱한 초록의 원경을 본지도 오래되었고, 그렇다고 눈을 자주 깜빡이는 것도 아니고, 바늘에 찔린 듯 따가워도 참다보니 눈이 안 나빠질 수가 없을 것 같았다. 내가 눈알이라도 시력감퇴 안하고는 못 배길 것 같다. 차라리 눈 운동이라도 주기적으로 했다면 좀 도움이 되었을려나?

물론 유전적인 원인도 있겠지만, 생활습관이 크게 작용을 했을 것이다. 그러다보니 공부도 잘하고, 독서도 좋아하면서도 시력 좋은 사람들이 정말 부럽다. 어떤 습관을 가졌기에 안경을 안 쓰고도 저렇게 잘 살 수 있을까? 어쨌든 습관을 바꾸는 게 쉬운 건 아니므로, 한동안 내 시력은 더 떨어지면 떨어졌지 나아질 것 같지는 않다.

시력은 왜 안 좋아지는 걸까? 대한민국 이과생이었고, PEET준비생이었던 나로서는 그 원리를 대략적으로는 안다. 일반적으로 모양근이라는, 눈에 있는 아주 작은 근육이 수축과 이완을 하면서, 우리 눈의 수정체(흔히 말하는 눈알) 굴절률을 조절한다. 그런데 근시라고 하면 이 모양근이 제대로 이완을 못 하고 수축한 상태로 머물게 되면서 원근조절이 불가능해 져서 생긴다고 보면 된다. 또 다른 경우, 우리 눈의 상이 맺히는 부분에 비해 안구의 길이가 짧거나 길어지면 시력저하가 생긴다고 한다.

내가 피안성의 넘버원, 안과를 전공하는 의대생도 아니고, 정확한 연구 논문이나 통계자료를 아는 것도 아니고, 생선눈알 빼먹은 거 말곤 눈알을 직접 해부할 기회(?)도 없었으므로 이정도 지식은 사실 그냥 교양 수준이다.

어쨌든, 그래서 내 눈의 상태가 어떤지는 모르겠고, ‘그렇다면 근육을 다시 원래 상태로 돌릴 수 있다면, 시력교정이 가능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얼마 전부터 들었다. 그러니까, 라식 라섹 드림렌즈 말고도 치료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이런 거야 대체의학자 나부랭이들이 좋아할 만한 주제가 아닌가! “수술 없이 고쳐드립니다!” 현수막을 어디엔가 걸어야 할 것만 같다.

물론 난 정상과학의 추종자이므로 무슨 대체의학에서 하는 [시력! 고쳐진다!]류 말고, 그러니까 모양체 민무늬근과 안구의 제대로 된 메커니즘을 알고 있다면 시력을 회복하는 약을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되면 돈도 많이 벌고 좋은 거지 뭐, 헤헤

사실 어떤 과학자도 생각을 안 해서 시도도 안한다기보다는, 워낙 어렵고 아직은 미지의 영역이라 아무도 성공하지 못한 상황일 것이다. 멀쩡한 사람 눈을 뽑아서 연구할 수는 없지....

아무렴 어떤가, 열역학 제2법칙처럼 인류가 넘지 못한 불가능의 영역도 아니고 그저 모른다는 건데 이리저리 연구하다보면 무슨 결과라도 튀어나올 것 같다. 설령 그것이 별 쓸모없는 결과였고, 단지 나의 호기심을 채우기만 하는 어떤 일말의 지식이더라도 언젠가 빛을 발할지도 모르니까.

몇 년 전 노벨상의 주제가 바로 GFP, 녹색형광단백질이었는데, “해파리는 왜 저런 알록달록한 빛을 내나?”라는 매우 소박한 질문에서 시작되었으며, 이게 생명과학에서 얼마나 많이 쓰이게 될지 누가 알았을까?

당장 돈이 안 되더라도 재밌는 것, 궁금한 것, 그리고 쓸모 있을만한 것에 집중해보고 싶다. 사실 난 호기심이 너무 많아서 하고 싶은 게 많기도 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정말 처음부터 돈과 인기 같은 것에 연연하지 않고 내가 좋은 것을 하며 주욱 달려갔다면 좋은 결과가 났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다행히도, 지금 내가 딛고 있는 이 분야가 내 관심사와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건 아닌 것 같이 느껴진다.

앞으로 공학쪽으로 다시 돌아와도 생명과학 쪽으로 진로를 잡고 싶다.(솔직히 분자계통학이나 Evo-Devo도 하고 싶다) 아마 그렇게 된다면 분자신경생물학이나 세포생물학으로 진로를 틀어야 되나?

그리고 운이 좋아 약학으로 진로를 바꿀 수 있다면 기초약학 쪽으로 가는 게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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