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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 데드 리뎀션2 플레이 후기

코리안더 2023. 4. 3.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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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공부는 안 하고 레드 데드 리뎀션2 라는 게임을 4주 정도 플레이했다.

사실 게임을 사서 설치할 때까지는 대략 이주일 정도면 끝내겠다는 생각을 하며 가볍게 시작했다. 그런데 이 정도하고 나니 느낀 점이 많아서 별도의 글을 써서 정리하고 싶었다.

 


 

 2월 말이었던 것 같다. 유튜브에서 침착맨이 레데리2를 하는 걸 보고 '재미있어 보이네..'라고 생각했는데 결국 구매했다. 집 컴퓨터가 사양이 될까 했는데 결국 돌려보니 조금 버벅거려도 되긴 되었다. 다만 인터넷 회선이 느려서 그런지 설치하는데만 꼬박 하루가 걸려서, 결국 3월 1일 구매해서 2일부터 플레이할 수 있었다. 3월 29일 에필로그 끝까지 엔딩 다 보고 맵에 흩어진 무덤을 다 둘러보았으니 거의 4주 만에 끝낸 셈이다.

 사실 초반에는, 3일 정도는 플레이하며 고민했다. 괜히 샀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뒤에서 다시 말하겠지만, 진행도 느리고 불편한 점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본격적으로 스토리도 이해하며 몇 가지 능력을 잠금해제하자 비로소 푹 빠져들었다.

 

 우선 이 게임의 장점을 살펴보자.

 게임을 하면서 가장 놀란 점은 내가 정말 이 세상에 들어와 있다는 느낌이다. 물론 기껏해야 눈과 귀로만 느끼는 수준이지만, 눈부신 햇살과 따뜻한 흙, 흩날리는 나뭇잎과 흐르는 시냇물을 보고 있으면 흡사 새로운 세상 속에 들어와 있다고 느꼈다. 자연환경이 정적이기만 하지도 않고, 눈이 다리까지 쌓인 설산에서는 내가 눈을 헤치고 간 자국이 남아있거나 모닥불을 피우고 간 자리에 그을음이 남거나 물 근처를 지나갈 땐 새떼가 날아가기도 한다. 사실 이런 건 다른 A급 게임에서도 자주 구현되는 것 같은데 가장 놀란 건 야생동물이나 NPC들 간의 상호작용이었다. 게임 초반부터 나오던 게 수사슴끼리 힘을 겨루거나, 시체에 까마귀가 몰려오거나 엘크를 사냥하는 늑대 등, 게임 내에서 예상치 못했던(그러나 현실에서는 비일비재하는) 상호작용을 보니 정말 이 세상 속에 존재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처음에는 사냥이나 낚시를 별로 즐겨하진 않았다. 초반부엔 이것 말고도 퀘스트가 많아서 이것저것 깨며 가끔씩 사냥이나 채집을 했다. 플레이 중반에 어쩌다가 낚시를 즐기다 보니 가방의 소지량 제한 때문에 가방 아이템을 만드려고 사냥을 계속한 적이 있었는데 또 하다 보니 사냥도 재미있어졌다. 사냥을 하며 깊은 숲 속도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캠프도 하고 마을에서 아주 멀리 다니며 훨씬 더 이 게임 속 자연환경에 잘 빠져든 것 같다.

 레데리2의 또 다른 장점이라고 하면 탄탄한 스토리와 등장인물이다. 사실 게임이 이주일 정도, 금방 끝날 줄 알았는데 해도 해도 할 게 남아서 신기했다. 퀘스트가 많아서 6만 6천 원이 아깝지 않았다. 메인 퀘스트뿐만 아니라 다른 할 일, 예컨대 사냥이나 낚시, 수집 요소를 모으고자 하면 시간 가는 줄 모를 것 같았다. 게임 내에서는 광활한 미대륙이 배경이라 다양한 배경설정을 가진 등장인물이 나온다. 스코틀랜드계 이민자, 중국계 노동자, 프랑스어를 쓰는 흑인, 동부에서 온 사기꾼 등등... 각 캐릭터의 세세한 배경 설정들과 완벽한 성우 녹음도 완벽한 게임을 만드는 데 일조했다.

 탄탄한 배경 설정과 더불어 게임 내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도 흥미진진했다. 스토리 내에서는 언급만 되었던 블랙워터 사건부터, 클라이맥스를 지나 엔딩까지, 한 편의 서부영화(플레이타임으로 보면 여러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으로 진행했다. 퀘스트 자체도 어렵지 않아서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는 생각에 새벽까지 게임한 적도 많았다. 스토리에 관한 더 자세한 이야기는 예비 플레이어에게 힌트를 줄 수 있으니 이 정도만 하고 자제해야 할 것 같다. 사실 이 게임을 할 때는 갑자기 눈 덮인 새로운 세계에 던져진 것처럼 어안이 벙벙했는데 초반부터 등장하는 많은 인물들의 관계와 배경 설명에 조금만 익숙해지면 앞으로 전개될 흥미진진한 메인 스토리에 푹 빠질 것이다. 내 생각엔 대략 챕터2 중반, 주인공 아서로 동네 근처도 가보고 몇몇 능력도 제한 해제될 때쯤부터였던 것 같다.

 메인 퀘스트뿐만 아니라 코믹한 서브 퀘스트와 잔잔하고 감동적인 퀘스트, 지루하지 않게 해주는 인카운터도 있어서 다채로웠다. 미국의 자연을 찍는 사진사를 도우며 미국 대자연의 다양한 풍광도 간접적으로 나마 느끼고, 도시 출신의 홀로 남겨진 과부의 자립도 도와주고 대도시의 이상한 화가도 코믹하게 도와주는 등 재미있는 경험을 많이 했다. 그래서 그런지 엔딩을 볼 땐 한 번쯤 마주쳤던 많은 인물들과 한 번 작별 인사를 하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이 세계(이 단어 말고 뭐라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지만)에 애정이 생기기도 했다. 광활한 오픈월드에서 마주하는 수많은 인카운터도 신기했는데, 산을 가다가 도적에게 털리는 시민을 구하기도 하고, 야생동물을 사냥하는 사냥꾼 뒤에서 따라보기도 하기도 했다. 이런 모든 요소들이 마치 내가 이 세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듯한 느낌을 주도록 하는 게 아닐까.

 

 이 게임에도 단점이 없는 건 아니다. 물론 모든 사람이 한 게임을 100점으로 줄 수는 없을 텐데 이 게임은 몇 가지 요소에서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점이 있다.

 일단 스토리를 보면, 여러 퀘스트가 있긴 한데 본 스토리와 관계없는 서브 퀘스트들은 이 게임의 엔딩과 큰 관련이 없다. 기껏해야 몇몇 대사 정도만 바뀔 정도의 영향을 미치고 본 스토리는 한 방향으로만 진행된다. 물론 게임이란 게 하나의 이야기라고 치면 당연히 기승전결의 구조가 정형화되긴 하겠지만, 이 게임의 중요 퀘스트와 그 전개는 고정되어 있다. 약간의 순서 변동이나, 주인공의 명예도에 따른 결말 차이가 있긴 하다. 근데 이 명예라는 시스템은 사건의 표현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만 전개 양상이 크게 바뀌는 요소는 아니다. 또한 내가 한 선택 역시 본 퀘스트가 아닌 다른 행동들로 명예를 완벽하게 바꿀 수 있다 보니 조금 의아한 결론이 나기도 한다. 예를 들어보자. 명예가 높을 때 엔딩과 명예가 낮을 때 엔딩의 연출은 확연히 다르긴 하지만 근본적인 결말(누가 어떻게 되는지 등)은 동일하다고 볼 수 있다. 각 퀘스트들에서 아무리 명예가 마이너스되는 선택을 했어도 낚시로 물고기를 열심히 방생하거나 지나가는 사람만 잘 구해주면 명예로운 엔딩(?)이 나오기도 한다. 반대로 퀘스트로 사람들을 많이 도와줬어도 전투 중 말을 잘못 죽이면 명예가 뚝뚝 깎여서 이상한 연출이 나오기도 한다. 이처럼 명예라는 수치는 특이한 행동들로 바뀔 수 있어서 아이러니하긴 하다. 물론 이런 특성은 게임적 허용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중요한 점은 '분기점에서 나의 선택'이 근본적인 게임의 연출에 큰 변화를 주지는 않는 단선적인 연출이 특징이다. 또 진행 중 상대방에게 쏴도 안 죽거나, 아예 잡을 수 없도록 설정된 경우도 있어서 아쉬운 점도 있었다. 물론 난 이런 영화적 연출도 만족하는 데, '높은 자유도가 최고야!'라면서 싫어할 사람도 있을 것 같다.

 또 다른 단점이라고 하면, 답답하고 불편한 플레이 방식이다. 현대적인 자동소총이 이 시기에 없었다는 건 당연히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 게임에서 발사 후 한 번 더 마우스로 클릭하여 공이치기를 젖히는 동작도 해줘야 한다(리피터도 동일). 예전에 콜오브듀티를 하던 수준의 볼트액션을 생각했는데 한 번 더 클릭한다는 걸 자꾸 까먹어서 생각보다 쓰기 힘들었다(물론 옵션이 자동액션이 있긴 함). 이런 단점은 데드아이로 극복할 수 있지만, 데드아이를 많이 쓰면 갑자기 느려지며 게임 중 대사가 잘 안 보이고 흐름이 끊겨 아쉬웠다. 중반이 지나면 데드아이 레벨도 오르고 귀찮아서 데드아이 상태의 라이플로 한 번에 다 죽이긴 했다. 다이너마이트나 올가미 같은 것도 묘하게 쓰는 게 불편했는데 '이 캐릭터가 왜 이 동작을 자꾸 하지?'라거나 '왜 잘 안 잡히지' 이런 생각을 많이 하긴 했다. 내가 방법을 몰라서 그런 건가.

  정말 불편했던 건 마을 내에서 의도치 않게 뺑소니를 치거나, 빨리빨리 시신을 뒤지고 싶은데 묘하게 캐릭터가 굼뜬 반응을 해서 다른 동작을 한 적이 많았다. 당연히 생겨야 할 상호작용 활성화도 특정 각도에선 안돼서 답답할 때가 많았는데 대표적인 게 침대 앞에서 잠자기(E)를 누르고 싶어도 활성화가 안되거나, 바닥에 떨어진 걸 줍고 싶은데 안 되는 경우였다. 이런 몇몇 불편한 요소 때문에 하다가 한 숨 쉰 적이 좀 있었다. 물론 중후반이 지나니 귀찮아서 아이템을 그냥 놓고 가거나, 마을 내에선 아예 말에서 내려 뛰어다니기도(이걸 의도한 걸까) 했다.

 카메라 뷰가 불편한 점도 한 몫했다. 캐릭터 눈높이의 낮은 각도에서는 카메라의 최저 높이를 맞추기 위해 이리저리 흔들리는 경우가 많았고, 위에서 보면 배경(특히 숲 속) 때문에 줌인줌아웃을 요란하게 반복하는 경우가 좀 있었다. 설정에서 좀 조절해 봐도 제대로 해결되진 않았다. 카메라 위치 고정 같은 기능이 있으면 그나마 좋으련만...

 자막은 느낌을 살려 정말 훌륭하게 번역했는데 몇몇 부분에서 조금 아쉬운 번역이 있었고(대체로 다 만족함), 챕터5 후반부엔 번역이 출력되지 않는 작은 버그도 있었다.

 이렇게 단점을 몇 가지 나열하긴 했지만 몇몇 문제는 개발자 입장에서 어쩔 수 없었겠구나, 이해되기도 했다. 의도적으로 조금 불편함을 느끼도록 한 것 같기도 했고. 아무튼 이런 단점들이 이 게임의 여러 훌륭함을 크게 가릴 정도로 문제가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 3D게임에 쉽게 멀미를 하거나, 아직 3D게임 조작 자체가 어렵거나, 아예 가상세계에서의 살육 자체도 반대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이 단점을 감수할 정도로 좋은 게임이라고 본다.

 


 

 3월 29일, 드디어 게임을 끝냈는데 아직도 게임의 여운이 가시지 않는다. 며칠간 조금씩 글을 써보면서 생각을 정리해 보았다. 게임 스토리에 푹 빠졌었다. 광활한 자연환경과 다양한 인물들에 매료되었다. 그리고 그 배경이 된 백여 년 전의 미국역사도 궁금해졌었다. '미국에도 이런 역사가 있었구나', '이런 인물도 있었겠구나', '그들은 역사를 이렇게 기억하는구나', 게임하는 내내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그 외에 게임에 등장하는 중요 캐릭터에 대한 생각은 별도의 포스팅에 올렸다(링크). 다만 스토리가 나와 있으니 알고 싶지 않은 사람은 다 클리어하고 방문하길 추천한다.

 많은 사람들이 '갓겜'이라고 했는데 나도 동의한다. 기회가 되면 꼭 플레이해보시라. 이제는 1899년, 미국 광야와 한 갱단을 배경으로 한 한 편의 드라마 같은 게임 레드 데드 리뎀션2를 드디어 놓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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