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런 버핏 바이블
워런 버핏, 리처드 코너스 지음
이건 편역
신진오 감수
에프엔미디어
정말 유명한 책을 다 읽었다. 이 책도 읽은지 꽤 됐는데 밍기적 거리다보니 이제서야 독후감을 쓴다.
책 구성이 좋다. 주주총회 발언을 단순 시간순으로 나열하지 않고 주제별로 재구성해서, 읽을 때 더 집중할 수 있었다. 읽다보면 주식투자자로서 흥미로운 부분도 있고 미국인이 아닌 한국에 사는 일개 개인투자자로서 그렇게 도움이 안되는 부분(보험업)도 있긴 하다. 역자 서문에서도 주주총회 답변이나 주제별로 읽기부터 권하는 걸 보니 책 내용이 꽤나 방대하고, 시간순으로 읽는 게 비효율적이라고 판단하는 듯 하다.
주식투자를 하며 좀 잃기도 하고 얻기도 해보니 이 책이 왜 좋은 책인지 알 수 있었다.
먼저 평생을 투자로 살고 있는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의 투자관을 알 수 있다. 이건 직접적인 투자전략과는 조금 다르기 때문에 이 책을 읽었다고 자기 투자에 써먹기는 힘들지만, 훨씬 더 근본적인 투자관을 형성하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에 좋다고 본다. 물론 워런 버핏의 부의 축적을 분석한 다른 책에서는 그가 돈을 어떻게 벌었는지 더 비판적으로 나올 수 있겠지만, 적어도 본인이 과거에 어떻게 생각했는지 직접 원문을 볼 수 있으니 큰 도움이 된다.
인상 깊었던 점을 몇 가지 말해보자.
정말 좋은 기업을 찾는데에 큰 노력을 기울이고, 그 기업을 아예 인수해버리는 점이 인상깊었다. 사실 이 방법은 일반 주식투자자는 거의 불가능하다. 따라서 기업을 소유할 수 있을 정도의 자산가라면 워런 버핏 같은 투자법을 더 잘 실천할 수 있겠지만 우리는 약간 다른 전략이 필요하지 않을까, 라는 비판적 생각도 은근슬쩍 들었다. 그 직후 그 유명한 펀드매니저인 피터린치도 떠올랐는데, 워런 버핏의 투자방식도 좋지만 이 방식만이 유일한 방법은 아니라는 걸 떠올렸다.
따지고 보면 워런 버핏은 여러모로 유별난 사람이라 우리 같은 일반인은 그의 투자법을 공부하기 전에 그의 일생과 투자 스타일을 조금이라도 아는 게 도움 될 것 같다.
https://www.youtube.com/watch?v=1qRPoP_ilfU
우선 20살이 되었을 때 이미 생업걱정이 없는 성공한 투자자였다(물론 상류층이었지만, 상속은 아니다). 20살 때부터 이미 전업투자를 할 수 있는 환경과, 30살에 겨우 취직을 해서 아직 집도 못구한 청년의 투자 스타일이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또한 주주자본주의가 다른 나라보다 훨씬 더 발달한 미국에서 한평생을 보냈다. 우리가 그사람을 따라한다고 그와 같은 부자가 될 지는 이정도만 말해도 충분하지 않을까싶다.
가장 인상깊었던 건 본인의 실수를 인정하는 태도였다. 워런 버핏이 다른 부자들보다 더 존경받는 건 그가 주식투자자라서 다른 일반인 투자자의 롤모델이 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가 주주총회나 언론과 이야기할 때 드러나는 지혜 때문이다. 특히 본인의 실패 사례(p. 186)를 직접 이야기하기도 하고 본인이 남들을 앞서나간 비결을 겸손하게 이야기(p. 621)하기도 한다. 예시를 들 때는 누가 들어도 이해하기 쉽게 비유한다. 이런 점이 전세계 투자자들에게 '구루'라는 칭호를 받는 이유일 것이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내가 그와 같은 투자법을 실천한다면 부자가 될수 있을까? 시작이 늦었으니 좀 덜번다는 건 감안하더라도, 적어도 유의미한 부자가 될 수 있을까? 사실 쉽지 않을 것 같다(물론 아직 안되어봤으니).
이유는 위에서 나온 것과 같다. 올바른 투자관과 올바른 기회가 만나서 마치 눈덩이가 내리막길을 지나며 점점 더 커지듯 부가 커졌기 때문이다. 또한 10대부터 이미 완성(?)된 그의 투자관과 자금력이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나는 이제서야 투자를 시작하는데, 솔직히 24시간을 투자에 쓸 수가 없다. 투자금도 많지 않고, 일단 벌어 먹고 살기 위해 생업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의 투자법을 100프로 소화할 수는 없어도, 이 책에서 내가 얻을 수 있는 건 무엇일까?
일단 이 책에는 좋은 내용이 너무 많아서 한두개만 콕 집어서 이야기하기 힘들지만, 굳이 몇 가지 꼽자면 투자의 호흡을 길게 잡고, 너무 욕심부리지 않고 궁극적으로 '좋은 기업'을 고르라는 것이다. 세부적으로 어떤 기업이 좋은 기업이라고 이야기하는 내용은 없다. 이 부분부터는 내가 채워나가야 한다. 하지만 주식시장에는 어떤 일도 생길 수 있기 때문에 하루하루 가격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스스로의 주관으로 판단하여 남들이 두려워하는 시기에도 기꺼이 좋은 기업을 찾아내서 투자해야한다는 걸 알았다.
투자를 할 때, 너무 조급해하지 말자. 투자란 게 일이년 만에 끝나거나 완성되는 것도 아니고, 평생 해야하는 행위이다. 또한 주식 투자는 행복한 놀이일 수 있다. 올바른 가치관을 가지고 즐겁게 꾸준히 하다보면 부가 따라올 것이라고 믿는다.
주식 투자자라면 이 책을 꼭 권하고 싶다. 다만 초보의 입문서로는 적절하지 않다고 보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우선 이 책은 투자방법서보다는 투자철학책에 가까운 책이다. 따라서 주식 투자를 처음하는 사람에게는 조금 뜬 구름잡는 이야기처럼 들릴 수도 있고, 역사적 맥락이나 미국과 한국의 주식시장의 차이, 워런 버핏의 성향 등을 알아야 더 실감나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적어도 몇 권의 투자서적을 읽어보고 몇 번의 투자를 하며 시장을 느껴봐야 이 책의 진가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또한 친절한 서적은 아니다. 위에서도 말했듯이 워런 버핏이 어떻게 부자가 되었는지, 미국과 한국의 증권시장의 차이나 보험업의 특성 등을 알아야 책의 내용을 잘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책에는 그의 투자법이 완벽하게 나와있지는 않다. 그가 어떤 투자를 통해 부를 축적했는지는 다른 책을 더 읽어 봐야하고, 그럴 바에는 그런 책을 먼저 접한 다음, 이 책을 접하는 게 더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본다.
나 역시 워런 버핏이 유명한 사람이라는 건 알았는데, 이 책을 통해 그가 어떻게 생각하는 지 더 생생하게 알게 되었다. 그의 공식 전기인 『스노볼』을 나중에 읽어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