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메이징 그래비티 : 만화로 읽는 중력의 원리와 역사
조진호 글,그림
궁리 출판사
얼마 전 교보문고에 갔다가 우연히 눈에 띄어 산 책이다. 예전에 마블 코믹스나 DC코믹스에서 나온 만화들이 영화화될 때'그래픽 노블'이라는 단어를 처음 들어봤는데, 사실 이게 만화(또는 애니메이션)와 뭐가 다른 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중력을 주제로 한 그래픽 노블이라고 하니 관심이 가서 사게 되었다.
사실 나도 과학을 전공하고 싶고 업으로 삼고 싶은데, 과연 대중과 과학적 지식을 함께 나누며 소통하기 위해서는 어떤 방법을 써야될까 하는 고민이 있었다.(물론 난 아직 전공도 정해지지 않은, 그저 학부생일 뿐이지만) 그러다가 만화로 과학적 지식을 설명하려는 책을 발견했으니 관심이 가는 건 당연했다. 또 물리에 대해서도 아주 크게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니...바로 사왔다.
이 책의 저자는 조진호 씨로 민족사관고등학교 생물교사이며, 서울대학교 사대 생물교육과를 졸업하셨단다. 사실 이부분에서 걸리던 대목이 '물리학과 대학원도 나오지 않았는데 잘 설명할 수 있을까?'라는 것이었는데, 이는 조금 있다가 더 이야기하고 싶다.
이 책은 전반적으로 고등학생이라면 이해할 수 있을 만한 난이도였다. 크게 어렵게 설명한 부분은 없었고, 그림도 너무 화려하거나 알아볼 수 없게 그린 것도 아니라 내용에 집중하기가 쉬웠다. 내용은 과학사, 그 중에서도 물리학사와 천문학사를 중심으로 서술했으며 고대에서부터 뉴턴이 등장하기까지가 거의 대부분이다. 이 부분이 탁월하다고 느껴진 게, 우리가 일반적으로 중고등학교에서 배운 물리학에서는 아주 단순하게 아리스토텔레스의 운동관만 살펴보고 넘어가는데(그나마도 거의 고찰할 수도 없는..)이 책에서는 다른 많은 철학자-그 때는 자연철학이라 불렸으므로-들도 이야기하고 넘어간다. 초중반까지는 거의 천문학사를 중심으로 중력을 살펴보다가(물론 이게 구별이 엄밀하게 되는건 아니므로 그냥 물리학사라고 해도 틀린건 아닐 것이다) 근대의 자연철학자들이 등장하며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내용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사실 할리데이 일반물리학을 몇번이고 읽어본 나는 이부분이 정말 더욱 흥미진진해졌는데 책의 남은 부분을 보니 거의 끝에 다다랐다. 이제 본격적인 이야기로 들어갈 것 같았는데 아인슈타인인과 상대성이론이 나오며 끝이나다니...조금 아쉽긴 했다.
근데 생각해보면 과학사 만화도 아니고 '중력'그 자체에 집중을 한다면 이런 구성이 오히려 좋을 수도 있겠다. 쓸데 없이 길어지면 잘 모르는 사람들은 오히려 길을 잃어 버릴테니...
어쨌든 오랜만에 물리를 보니 재밌기도 했고, 또 신선하기도 했다. 다시 할리데이 책 펴서 공부하고 싶기도 하고...교양 물리서적을 다시 사서 봐야하나?
그나저나 이 책에 조금 표현이 애매하거나 잘못된 부분이 있어 책을 읽다가 '내가 잘못 안건가? 책이 잘못된 건가?'같은 고민에 빠지기도 했다.
일단 208페이지에 있는 그림에서, 지구 자전에서 무게를 두방향으로 분해한 그림이 있는데 이 그림이 좀 이해가 안간다. 사실 나는 고등학교 때까지는 물리 공부를 거의 안하다가 대학교에 와서 물리공부를 하다보니 원심력이 나오면 조금 당황한다. 할리데이에서는 원심력이 안나오기 때문이다. 사실 원심력과 구심력은 관성기준틀에 따라 바뀔 뿐인 개념이긴 하지만, 난 구심력이 편하고 원심력은 좀 헷갈린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원심력으로 설명을 하고, 또 그림의 힘의 방향들이 좀 잘못된 것 같이 느껴진다. 원심력의 방향은 왜 저쪽이고, 중력은 만유인력이 아닌가? 그런 겉보기 무게가 있다면 그건 중력과는 다른 걸테고...내가 어딘가 이해를 잘못한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바로 다음 210페이지에 나온 그림에서, 한 방향으로 굴러가고 있는 구슬이 측면에서 힘을 받는다면 정확하게 힘의 방향으로 꺾이는 것이 아니고, 원래 가지고 있던 그 방향으로의 운동량은 유지가 되어야 하는 게 아닌가? 내가 말로 설명하려니 오히려 더 이상하긴 한데, 벡터를 이용해서 힘을 분해해서 그리는 게 맞는 것 아닌가 라는 게 내 생각이다. 이건 물론 중요한 개념은 아니지만 과학 그래픽 노블인 만큼 이런 세세한 부분에서도 신경을 써야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위에서 설명했듯이 작가분께서 생물학과를 나오셨는데 아마도 그림을 그릴 때 정확하게 작도했다기 보다는 별 생각없이 슥슥 그리셔서 이런 일이 일어난 것 같다. (물리학과가 아니더라도) 물리학문제를 많이 풀어봤다면 습관적으로 축을 나눠서 운동량 보존법칙에 맞게 그리셨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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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226페이지에서 m= a/ F 라는 게 떡하니 나와있는데 이건 정확하게 틀렸다.
F=ma 이므로 m= F/a 여야 하는데 완전히 반대로 써놓았으니 틀렸다. 이건 꼭 고쳐야 할 부분인 것 같다.
이외에도 조금 이해가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부분이 있었는데 이쪽은 내 독해력의 문제인 것 같아 넘어가야겠다. 이런 몇 가지 오류를 제외하면 전반적으로 이해하기 어렵지는 않았는데 이유는 아마도 작가분께서 물리학을 전공하지 않았고, 교사이기 때문에 독자의 수준을 정확하게 파악하여 어디가 어려운 부분인지 잘 잡아내서 설명해서 그렇 것 같다. 물론 그러다보니 지식의 정확함은 조금 떨어지겠지만...
사실 이런 정확함의 부족이 바로 과학분야(뿐만 아니라 사실 거의 모든 지식이 필요한 분야는 이런 문제를 안고 있을 것이다)에서 잘 발생하는 비전문가 작가의 한계인 것 같다. 얼마전 읽은 『종의 기원, 생명의 다양성과 인간 소멸의 자연학』에서와 마찬가지로, 그 분야에 몇십년동안 천착한 사람이 아니면 그걸 정확히 알기란 어렵다. 그래서 왜곡될 수도, 오해가 생길 수도 있다. 이런 걸 조심해야 하긴 하는데...어쩔 수 없는 문제이기도 하니 일단 과학자, 공학자들이 먼저 나서서 많이 이야기를 풀어놔야하는 게 아닐까. 제일 좋은 것은 그 분야에 정통한 사람이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서 쉽고도 정확하게 이야기하는 것일테니...
어쨌든 이런 책이 나와서 정말 고맙다. 이렇게 조금씩 우리나라에도 알기 쉬운 과학 문화가 자리를 잡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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